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로크 음악/역사 (문단 편집) ==== 초기 ==== [[마르틴 루터|루터]]의 영향 아래 있던 북부 지역은 코랄을 중요시하였지만, 새로운 모노디 양식을 적극 받아들였다. 앞서 언급한 종교 콘체르토가 유행하였는데, 이러한 선구자 역할은 한 사람은 [[헤르만 샤인]] 이다. 이러한 콘체르토의 악곡 수가 늘어나면서 그것이 독일만의 종교 칸타타의 효시가 된다. 샤인 이후 더욱 다양한 가사들과, 독창, 합창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. 또한 옛날부터 수난시기에 연극처럼 하던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재구성한 [[수난곡]]이 인기를 끌었다. 이 두 장르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 음악 장르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[[오라토리오]]와 [[모테트]] 등이 자주 연주되었다. || [youtube(lCKItYvkMlg)] || || '''[[하인리히 쉬츠]]'''의 '''《요한 수난곡(Johannes-Passion, SWV 481)》''' 중의 마지막 합창. [br] 그의 사후 독일 교회에서는 성주간의 음악으로 수난곡을 채택하게 되며 [br]이후 우후죽순처럼 수난곡이 작곡되게 된다. [br] [[르네상스]]적인 편성이지만 느낌은 오히려 [[바로크]]적 느낌을 준다. || 두말할것도 없이 이시기 가장 위대한 작곡가는 [[하인리히 쉬츠]]로, 위의 언급한 양식들에 직접 이탈리아로 유학 다녀온 경험들을 풍부히 녹여냈다. 그는 모테트, 종교 협주곡, 오라토리오 등 수백곡을 작곡했으며, '수난곡'을 최초로 작곡한 독일 교회음악의 아버지라 불린다. 기악곡에서 보면 북독일악파의 시초라 불리는 [[얀 피터르존 스벨링크]]가 독보적인 오르간 작품들을 작곡하였으며, [[사무엘 샤이트]]같은 후세대 오르가니스트 등을 지도했다. 그외 [[프란츠 툰더]] 등이 오르간이 '악기의 왕'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. 한편 남부 독일의 [[요한 야콥 프로베르거]] 역시 쳄발로 음악을 주류로 올려놓는 데 노력했으며, 건반 모음곡, 즉 알르망드-쿠랑트-사라반드-지그 로 이어지는 춤곡 장르를 정형화시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